위의 이미지는 장수정가자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pdf파일을
이미지로 저장한건데 제가 글을 빨리 자세히 보실 수 있도록
아래처럼 따로 글자 하나하나 보고 직접 입력하여 텍스트로
꾸몄습니다. pdf 파일용량이 자그만치 96.9MB 무진장 크네요.
제가 이걸 따로 캡쳐하고 작업하느라 좀 힘들었지만...
힘들어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저 장수정기자님한테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이런 인터뷰 기사는 정말 저에겐 너무 소중한 자료입니다...
'바야흐로 사극드라마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요즈음이다. TV 브라운관에서는
일주일내내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우리 역사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극적 반전의 묘미,
로맨스, 유머까지 함께 버무려내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오늘날의 사극드라마. 이는 중견연기자들이
강력한 '포스'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했으며, 그 가운데에서 텔런트 임혁은 30년 연기경력의 내공을 빛내고 있다.
사극드라마의 백전노장
KBS 역사드라마 <대조영>은 고구려 패망기에 강력한 카리스마와
탁월한 리더십으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재조명한 것으로 지난해
9월 첫 전파를 탔다. 이 드라마에서 임혁은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
역할을 맡아 사극드라마로 다져 온 탄탄한 연기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1976년 KBS 공채 3기로 데뷔했으니 30년의
연기경력을 쌓고 있는 그는 '사극정문 배우'로 통할 만큼 사극 드라마의
출연이 많았다. "1년에 1~2편 정도는 했으니 대략 꼽아보면
30~40편 정도는 했겠네요. <신돈> <무인시대><명성황후>
<여인천하>...그 중에서도 <용의 눈물>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사극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들었던 작품이죠.".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 H. Carr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거에 대한 재해석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사극
드라마의 역사를 그는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사극에 처음 매력을
느낀 것은 1980년대 초에 방영된 TV문학관 <등신불>. "김동리 선생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것인데 등신불이 된 만적스님을 연기했어요. 그땐
연기를 잘 모르고 한 것 같은데 제 자신에게도 시청자들에게도 뇌리에
오래 남는 작품이였던 것 같습니다".
"카리스마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에서 나오는 것"
수많은 사극을 통해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는 임혁에 대해 최근 부쩍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있는 시 청소감에는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에 감탄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당태종 암살단을 조직해 당나라 군대의 본진에 침투하는 대담한
장면에서부터 아들 대조영과 재회하는 감성적인 장면까지, 조이고
푸는 연기를 그는 힘들이지 않고 연기해내 호평을 받았다.
"가끔 연기에 내공이 있다거나, 카리스마가 넘친다거나, 눈에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는 평을 듣기는 하죠. 그런데 그런 얘기는 한 번
듣고 잊어요. 연기자는 겸손해야 하거든... 잠깐 인기 올랐다고 자만하면
연기 오래하기 힘들어요. 요즘은 연기력도 세월이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30년 간 사극 위주로 연기를 해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사극 촬영
현장은 여전히 현대물에 비해 열악하다. 게다가 연기하기도 힘든 장르로
젊은 연기자들은 출연을 기피하는 것도 사실. "대사, 액션 등에서 비교가
안될 만큼 노력과 힘이 필요한 분야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배우들의
연기에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는 것 같은데, 저는 카리스마라는 것은
배우가 아니라 그 역할, 배역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진정
작품에 녹아 있는 연기자의 자세죠". 그는 여전히 배우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년시절 권투로 다진 강철체력
<대조영>에 출연할 때 그가 입는 의상은 주로 갑옷, 이 갑옷의 무게가
20kg에 달한다. 쌀 한포대 등에 지고 말을 타고, 칼싸움을 하는 셈.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배역이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는데, 권투선수였던 형이 멋있어 보여서 고등학생때까지 체육관
다니며 권투했어요. 나중에 아버지가 잘생긴 얼굴 다친다고, 차라리
연기를 하라고 하셔서 그만 뒀지만, 하하" , 그 시절 부모들이 다들 만류했을
연기자의 길을 권유한 아버지의 남다른 혜안이
오늘날의 임혁을 키운 모양이다.
늘 준비된 배우 되기 위해 취미도, 특기도 운동
그는 요즘도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 수원으로, 문경으로 실내세트
장과 야외촬영장을 분주히 오가며 밤샘촬영도 줄을 잇고 있는 사극
드라마의 스케줄을 따라가자면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
"촬영이 끝나면 녹초가 되지요. 그래도 헬스센터로 달려가고, 산을
오르고 합니다. 배우에게는 몸이 재산인데 나태하면 금방 표가 나요".
그러고보니 그는 갑옷 속에 감춰놓기에는 아깝다, 싶을 만큼,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합기도와 태권도로
열심히 했을 만큼 겨루기 운동을 좋아한다. "권투, 합기도, 태권도...
그러고 보니 말타고 진검승부 벌이는 장면에서 내가 왜 힘이
나는지 알겠네. 운동 열심히 한 것이 이렇게 큰 영향을 줄지는 몰랐어요".
사석에서도 정확한 발음과 상대방을 압도하는 눈빛을 발하던 그는
감독의 준비 사안이 떨어지자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촬영장으로
힘차게 발길을 옮겼다. "꾸준한 운동, 절제된 마음가짐, 긍정적인 사고...
그것이 건강의 기본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 실천을 통해 앞으로도
좋은 연기 많이 보여드릴테니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관록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그의 작별 인사였다.